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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마치

mimnesko 2023. 2. 26. 10:18
- 마태복음 13:31~43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34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35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천국 체험"에 대한 간증이 적지 않았습니다.

일종의 임사체험(臨死體驗) 같은 것도 있었고, 또 기도 중에 입신(入神)을 체험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래 전 펄시 콜레라는 분이 '내가 본 천국'이라는 책을 국내에서 발간하여 열풍을 일으킨 적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후 국내 모 이단교단의 목사와 함께 연 집회 중에 '기적을 연출'하는 논란이 벌어지면서 그 내용의 신빙성은 말끔히 사라져 버리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천국 체험'이 거짓이거나 증명하기 어려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선 '죽음 너머의 일'들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습니다. '개미'라는 소설로 유명세를 얻은 베르나도 베르베르는 죽음 이후의 일을 그린 '타나토노트'라는 소설에서 사후 세계를 독특하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또 동명의 웹툰을 영화화 한 '신과 함께' 역시 한국 민속 신앙(그리고 도교와 불교의 혼합물이 더해진)이 그리는 '죽음 이후의 일'을 그리고 있습니다. 최근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소울(Soul)'이 이 주제를 다루기도 했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인종과 종교, 사상을 떠나 사후 세계를 경험했다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죽음 이후에 밝은 빛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어떤 것(영혼?)이 육체를 벗어나 그 환한 빛으로 이끌려 들어갔다는 것이죠.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도 이런 장면이 등장하죠.

소위 "천국을 다녀왔다"는 분들의 간증에도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우선 죽음 후에 밝은 빛을 보았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일치합니다. 그리고 어느 방(?)에서 과거 자신의 기억을 마치 영화를 보듯 관람하게 됩니다. 흔히 '주마등처럼 스쳐간다'라는 것이 아마 이런 것이겠죠. 특히 그 영상의 내용은 자신이 범죄하던 순간들을 담아놓은 일종의 CCTV와 같습니다. 신기한 것은 본인이 회개했던 죄는 그 내용에 없었다는 것입니다(즉, 사후에도 기억이 존재한다는 거겠죠?). 주체할 수 없는 눈물(네, 생리현상도 있습니다)로 죄악을 회개하면 마침내 수정처럼 투명한 바닥 위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모든 죄를 통회 자복한 사람들을 온통 보석으로 장식된 집(주거환경도 있습니다)으로 인도하십니다. 그 때마다 등장하는 동일한 질문. "예수님, 이 집에는 누가 사나요?" 예수님 역시 동일한 대답. "이 집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나를 섬기던 사람의 집이다." 그리고 반드시 그와 대조되는 '허름한 초가집(?)'도 등장합니다. 즉 천국에도 '차별'과 '등급'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천국에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첨예한 대립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이러한 '비복음'을 논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지난 인류의 역사 중 유일하게 천국을 경험하셨고 또 그 경험을 직접 이야기해주신 분이 있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그 경험을 말씀하셨던 분이 우리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분입니다. 주위의 '천국 간증'이니 '사후 체험'이니 하는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오히려 직접 천국을 경험했고 또 그 사실을 직접 전해준 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보다 상식에 가까운 행동이 아닐까요?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이 마태복음 13장은 바로 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의 이 이야기 어디에도 '보석 박힌 집'이나 주마등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목사님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개털 모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금메달, 은메달의 상도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마태복음 13:34~35)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계신 예수님조차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비유는 단어를 포괄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국은 자라는 씨앗이며 밭에 감추인 보화입니다. 더욱 주의 깊게 살펴야할 것은, 본문 그 어디에도 '죽음 후'를 상징하는 단어가 없다는 점입니다. 즉 천국은 우리가 죽은 뒤에 가게 되는 어떤 '공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직 죽은 적이 없으니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마태복음의 본문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것입니다.

어느 신학자는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라고 묻는 질문에 '지옥이란 하나님의 일식(日蝕)'이리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 그곳이 바로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어디일까요? 그 신학자의 대답을 빌려본다면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그곳은 죽음 뒤에 보상으로 주어지는 어떤 재물이나 지역이 아닙니다. 천국은 겨자씨 한 알, 누룩, 밭에 뿌려진 씨앗과 같고 밭에 감춰진 보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수, 물고기들을 모으는 그물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세속적인 대답은 아니지만, 오히려 지나치게 현실적인 비유입니다. 마치 예수님은 천국은 살아내야 하는 것이지 도달해야하는 곳이 아니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그런 천국을 발견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