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BARR

마음에 가득한 것

mimnesko 2023. 2. 21. 10:06

- 마태복음 12:31~37

 

 

학창시절 어느 반에나 공부 잘 하는 친구가 하나쯤은 있기 마련입니다. 수업 시간에 앞 자리에서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고 쉬는 시간에는 책상에 엎드려 모자란 잠을 보충하던 전형적인 '우등생' 같은 친구들이죠.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 학원, 독서실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당시 유행 같은 것도 잘 모르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일에는 젬병인 친구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반에서 1등을 빼먹지 않는 공부 잘하는 친구가 운동까지 잘하면 어떨까요?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공도 차고 매점에서 컵라면 하나를 먹겠다고 아우성도 해보고, 점심시간에는 학교 담을 넘어 동네 마실까지 다니는 친구라면 또 어떨까요? 유행에도 뒤쳐지지 않고 게다가 성격까지 좋아서 반 뒷자리에 앉은 친구들(보통 키 크고 운동신경이 뛰어난 친구들인 경우가 많습니다)과도 막힘없이 소통하는 친구라면 또 어떨까요? 

 

"공부도 잘 하는 게 성격까지 좋으면 반칙이지!"

흔히 하던 농담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농담에 뼈가 있습니다. 사실은 공부도 잘 하고 성격도 좋은 게 맞는데, 그게 '전인교육'이라던 당시의 교시와도 맞고 '공부(工夫)'라는 한자의 뜻과도 일맥상통하는 일인데 왜 우리는 공부 잘 하는 것과 성격 좋은 것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어쩌면 '공부만 잘 하면 돼'라는 식의 엉뚱한 부추김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공부만 잘하면 친구 사이에서 지싯지싯거려도 눈 감아주는 것이 통례처럼 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엉뚱하게 친구들을 '경쟁자'로 둔갑시키고 모난 행동을 하더라도, "저 녀석 전교 1등이잖아."라는 한 마디에 모든 것을 용서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러나 성경의 이야기처럼 그런 '이상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무가 좋으면 열매는 좋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좋지 않은 나무가 맺는 열매가 '좋은 열매'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잠시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할' 열매처럼 보일지는 모르나 결국 나무의 뿌리가 끌어올린 물과 양분을 담아 열매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열매가 좋을 방편이 없습니다. 한국 사회가 언제부턴가 '머리 좋은 나쁜 사람'들을 길러내는 데에 열을 올린 나머지, 이젠 '착한 사람', '선한 사람'들을 '머리 나쁜 사람', '순진한 사람'으로 폄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슬픈 것은 그 썩은 열매를 먹고 나누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라는 점입니다. 우리의 자녀는 그 '머리 좋은 나쁜 사람'들에 의해 교육을 받게 됩니다. 사회의 선배들이 온통 그런 사람들로 넘쳐나게 됩니다. 바라 보아야 할 가치가 바닥으로 내려앉고, 내려 놓아야할 가지가 꼭대로 올라서는 '가치전복의 사회'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야 말로 악순환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엄하게 꾸짖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태복음 12:34)

 

 

오늘 우리의 마음을 '가득히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독사의 자식들처럼 마음 가득 타인을 향한 분노와 저주를 담고 하는 것은 아닌지.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얼마든지 폭발할 수 있는 거대한 폭탄 하나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