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BARR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mimnesko 2023. 2. 18. 06:00

- 마태복음 12:9~21

 

 

요즘 카페나 음식점에 가면 눈에 띄는 안내 문구가 있습니다. 
"종업원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그 짧은 문구에 담긴 마음이 한 번에 이해가 되었습니다. 산 자락에 붙은 '자연 보호'라는 팻말은 어진간히도 자연을 보호하지 않는 사람들의 심성을 일깨우기 위한 말입니다. 잔디밭 앞에 꽂혀 있는 '들어가지 마세요'라는 표지 역시 보란 듯이 잔디를 밟으며 자신만의 여유를 만끽하는 사람들의 못된 마음에 한 방울의 죄책감이라도 주고자 하는 글귀입니다. 그러니 '종업원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라는 말은 종업원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당신 가족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묻고 싶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행패를 부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세상의 모든 철학과 정치, 그리고 종교는 '사람'에 대한 존중 위에 세워졌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 시작도 사람이고 그 나중도 사람입니다. 태어나 100년 남짓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생각해보면 들에 피는 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랜 기간 성장하고, 미처 꽃조차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스러지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인간(人間)이라는 말 자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그 스스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뜻이지요. 사람은 누군가와의 '사이'에서만 비로소 독립적인 인격체가 될 수 있다는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이 황폐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 속에 '다른 것'이 들어갈 때입니다. 알량한 돈과 계급 의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의 사람됨보다 돈의 가치가 중요하고, 돈으로 사람의 등급을 나눌 수 있다는 철저한 자본주의적 사고를 우리는 '천민 자본주의'라고 부릅니다. 그런 말이 있다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의 단어로 묶어놓을 정도로 범주화 되었다는 뜻입니다. 

 

***

예수님은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양이 귀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양도 귀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더 귀하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안식일'보다도 귀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이유이며, 그 세상을 사랑하셨던 이유 역시 '사람'입니다. 한 사람이 '천하'보다 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하는 실상은 '나만 귀한 사람'이고 '내 자식만 귀한 자식'이 아닐까요? 

눈어림으로 매겨지는 사람들의 가격표를 먼저 들여다 보고 귀한 사람, 천한 사람을 나누고 있지는 않을까요?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거룩한 성도들에게 꼬리표를 매겨, 너는 '플로팅 크리스천'이지, 라고 말하는 무도한 세상은 아닐까요? 마치 사람과 동떨어진 종교가 있고, 사람과 동떨어진 교회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양보다도 못한 사람이라고 비웃는 세상은 아닐까요? 

 

최근 어느 교회가 목회자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 교단마저 떠나겠다고 결심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그 과정이나 결정, 무엇 하나 상식적인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떳떳하고 당당한 그 모습에 오히려 내 스스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혹시 바로 지금이, 안식일보다 손 마른 사람의 간절함을 크게 보셨던 주님의 그 안타까움이 필요한 세상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