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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가 곧 이사람이니라

mimnesko 2023. 2. 15. 10:25

- 마태복음 11:11~19

 

 

심리학 용어 중 '확증편향'(確證偏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과 신념에 기대어 상황을 보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보고 싶은 것만 본다'라는 말처럼 자신의 신념과 생각에 일치하는 정보만을 수집하고 자신의 신념이나 생각과 다른 정보는 배척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과거 사람과 사람, 또 집단의 심리학적 용어로 사용되던 이 '확증편향'이 빅데이터의 출연과 함께 한층 실생활과 가깝게 연결되었습니다. 

 

특히 개인과 개인이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있는 현대 사회는, 이러한 확증편향에 따라 새로운 집단이나 모임을 구성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에코 체임버 효과(Echo Chamber Effect)'라고도 합니다. 작년에 발간된 '트렌드 코리아'에선 개인의 파편화가 가속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와 같은 '에코 체임버'가 증대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습니다. 소위 'MZ세대'라고 부르는 용어 자체가 바로 '에코 체임버'입니다. 실제로 2, 30대 청년들은 자신을 'MZ'이라고 구분하는 것을 신통치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것은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확증편향을 기반으로 이질적인 세대를 또 다른 '에코 체임버'안에 가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신념과 생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때, 그 감정의 영역에서 확증편향은 발생합니다. 

 

개인의 취향이 빅데이터에 의해 수집, 가공된 후 다시 개인에게 전달될 때 우리는 나도 모르는 확증편향 속에 갇히게 됩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대표적입니다. 원래 빅데이터의 목적 자체가 '개인 맞춤형'입니다. 내가 자주 선택하고 확인하는 콘텐츠를 더 많이 노출하여 광고시간을 확보하려는 대형 IT기업의 의도가 그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튜브의 추천목록은 지난 몇 개월 간의 내 모습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론 나의 성향이 객관화된 데이터로 다시 나에게 뿌려지는 이 상황이 그리 유쾌하지 않습니다. "망망대해 드넓은 바다 위에 있어도, 배 안의 선실은 불과 한 평이 되지 않더라." 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우리는 스스로에 갇혀 동어반복적인 정보만을 취득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향해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이 땅에서 태어난 인간 중 이보다 더 큰 '존재'가 없다는 예수님의 격찬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는 광야의 광인이 아니던가. 나름 특별한 구석이 없진 않았으나, 지금은 헤롯에게 잡혀 감옥에 갇혀 있는 일개 죄수가 아닌가? 그저 귀신 들린 자가 아니던가? 

예수님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당시 이스라엘 회중의 마음 속 견고했던 확증편향에 균열을 내었습니다. 예수님이 보기에 이 세대는 어떠한 진리를 전달한다고 하더라도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세대일 뿐이었습니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마태복음 11:18~19)

 

 

그는 식탐이 있고 주정뱅이며 세리와 죄인과 창녀들의 뒷배이다, 라는 사람들의 웅성임 속에는 "그런 사람이 어떻게 메시아일 수 있는가!"라는 자신들의 생각과 신념이 숨어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자가 '하나님의 아들'일 수가 있겠는가! 결과적으로 그들의 확증편향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이 되었습니다. 내 생각과 신념에 옳다고 해서, 또 그것이 일정한 '사실'에 부합한다고 해서, 그것인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자신들만의 에코 체임버가 과연 현대 한국 교회에는 없을까요?

혹시 우리들만의 리그, 우리들만의 에코 체임버를 만들고서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양. 마치 세상을 관통하는 사실을 터득한 것처럼 생각하거나 행동하진 않습니까? 우리들만의 확증편향으로 세상을 좋은 편과 나쁜 편, 둘로 나누어 전쟁을 벌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19절 하반절의 말씀 속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단서를 하나 주셨습니다.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19절 하반절)

 

 

우리가 확증의 편향을 벗어, 스스로 만들어낸 에코 체임버를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이 것입니다. 행했던 일도, 앞으로 행할 일도 아닙니다. 오직 지금 우리가 행하고 있는 바로 그 일로 '옳다 함'을 얻습니다. 한국 교회가 그리고 그 낱낱의 성도들이 바로 지금 이 사회를 위해 하고 있는 바로 그 일로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옳다 함'을 얻고 있습니까? 비록 우리의 생각과 신념을 배반하더라도 기꺼이 그 '옳은 일'에 동참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그 좁은 길에 설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오늘 하루, 그 어렵고 좁은 길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예수님을 따라, 기꺼이 자신만의 울타리를 벗어나 걸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