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COFFEE

에스프레소?

mimnesko 2015. 10. 1. 01:42


처음 폴바셋에 갔을 때 함께 갔던 동료들이 폴바셋의 널찍한 메뉴판을 보고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아메리카노, 카라멜 마끼아또, 에스프레소라는 익숙한 단어대신 '룽고(Lungo)'니 '리스트레또(Ristretto)'니 하는 메뉴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바리스타 챔피언' 출신이라는 '폴 바셋'(이 신화는 늘 상당한 의심을 불러 일으킨다)의 이름을 이용한 매일유업의 상술이기도 하다. 에스프레소라는 말보다는 리스트레토라는 단어가 어쩐지 좀 더 전문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카페 아메리카노, 라는 말보다는 '룽고'라는 단어가 좀 더 바리스타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정말 리스트레토이고 정말 룽고라면 더할 나위가 없겠는데, 실제 맛을 보았을 땐 저절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정작 폴바셋에 다녀와선 커피는 잘 모르겠고, '아이스크림'이 맛있었다느니 하는 이상한 말을 하는 거다. 결국 상하목장이 폴바셋을 이긴 셈일까?


이쯤에서 추출량에 따른 커피의 분류를 잠깐 살펴보자.


 

 

 

위의 그림처럼 가장 일반적인 것은 에스프레소(30ml 추출)이다.

머신에 싱글포르타필터를 사용해서 30ml의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 에스프레소를 180~200ml의 뜨거운 물로 희석한 것이 카페 아메리카노(Cafe Americano)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인들이 비싼 커피를 아껴 먹던 방법이고(밥 대신 죽을 끓이는 원리와 같다고나 할까?) 미국인들이 즐겨마시는 필터 커피(Brewed Coffee)와 가장 근접한 맛이기도 하다.

 

리스트레토(Ristretto)는 일반적인 에스프레소의 추출보다 시간을 제한하여 20ml의 샷만 강제로 추출하도록 하는 방식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에스프레소보단 적지만 훨씬 부드럽고 카페인도 적으며, 커피 본연의 진한 맛을 충분히 즐길 수 있어서 '커피 좀 안다'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추출방식이다. 바로 이 '리스트레토'가 폴바셋의 메뉴에 있는 것이다! 물론 에스프레소 메뉴도 함께 있었다. 심지어 에스프레소도 도피오(Doppio)가 있었다. 역시 바리스타 출신이야. 그렇다면 당연히 리스트레토지.

 

함께 갔던 동료는 입맛에 익숙한 '아메리카노'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아메리카노'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직원에게 물었더니 '룽고(Lungo)'가 아메리카노, 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응? 룽고가 아메리카노라고? 룽고는 말 그대로 길다(Long)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길게 추출하는 커피란 뜻이다. 추출시간을 줄여서 진하고 부드러운 맛을 이끌어낸 리스트레토의 정반대에 있는 방식이다. 추출시간을 늘여서 5~60ml, 때론 그림처럼 90ml까지 추출한다. 주로 우유나 시럽 등이 첨가된 베리에이션 음료를 제조할 때 선호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폴바셋의 웹사이트에선 룽고(Lungo)를 "길다라는 의미의 룽고는 온수에 2 shot의 리스트레토를 부어만듭니다. 에스프레소보다 부드럽고 원두 고유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으며 진하면서도 부드럽게 입안에 감기는 맛이 달콤쌉쌀한 디저트를 연상시킵니다."라고 적어 놓았다. 물론 룽고(Lungo)의 사전적 의미가 꼭 장시간의 추출만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폴바셋의 룽고처럼 또는 스타벅스의 카페 아메리카노처럼 에스프레소+온수까지 포함하는 다소 폭넓은 용어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것도 룽고라고 할 수 있다, 는 입장을 지지한다면 역시 차이는 에스프레소 1샷(shot)과 리스트레토 2샷(shot)의 차이가 스타벅스와 폴바셋의 '아메리카노' 유형의 변별하는 포인트가 되는 셈이다. 강배전의 스타벅스 원두 대신 스페셜티를 자칭하고 나선 폴바셋의 약간 신맛이 느껴지는 로스팅의 차이도 있겠지만, 체감상 느껴지는 차이는 4,700원이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놀라운 가격이다.  

 

개인적으로 선택을 하라면 차라리 스타벅스에서 카페 아메리카노 숏(Short) 사이즈를 주문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가격도 저렴하고 비록 에스프레소 1샷이긴 하지만 온수의 양이 적기 때문에 에스프레소를 선호하지 않는다면 배부르지 않게 커피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더 좋은 방법은 스페셜티 커피를 취급하거나 선호하는 로스팅 원두를 가지고 있는 카페에서 직접 룽고를 부탁하는 방법이다. 최근엔 소규모 카페에서도 다양한 추출 방식으로 커피를 제조하고 있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즐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