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속초] 그리운 보리밥

mimnesko 2015. 5. 6. 00:50

속초에 도착하니 벌써 8시가 넘은 시간. 미리 마음을 정하고 찾아간 식당은 이미 영업이 끝난 뒤.

간단히 요기라도 하고 숙소로 돌아갈 생각에 동명항 근처를 찾았지만, 큼지막한 대게가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몇몇 횟집을 제외하곤 가족이 함께 조용히 식사할 만한 곳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해마다 여름이며 자의든 타의든 속초를 몇 번은 오곤 했었는데 최근 몇 년 간은 좀처럼 올 기회가 없었다. 그 사이 동명항 근처는 제법 규모있는 번화가가 되어 있었다. 그 때만 해도 동명항은, 대포항보단 상대적으로 덜 유명했던 탓인지, 천막 횟집들 사이에서 가격을 흥정하고 정체모를 회 한 접시를 가장 저렴하게 먹을 수 있던 곳이었는데...

 

딱히 정한 곳도 없이 길 모퉁이를 돌다가 발견한 밥집, '그리운 보리밥'.

속초까지 와서 보리밥을 먹는구나, 싶은 생각도 잠깐. 일단 문을 연 밥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지경이었다. 일단 자리에 앉고 보니 근처 등산을 마친 듯한 일행이 몇 명. 생각보다 조용하고 깔끔한 곳이라 일단 안심했다.

 

 

 

막상 반찬이 놓이고 제대로 상이 차려지자,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가장 기본 메뉴였던 보리밥 정식이었는데 정성껏 말아낸 달걀말이며 된장찌개며 맛난 반찬들이 주루룩 놓여진다.

 

 

 

아삭하게 맛있었던 열무김치.

 

 

이 거 하나로도 밥 한그릇을 뚝딱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달걀말이.

 

 

강원도 토속반찬이라던 옥수수 범벅. 정성껏 껍질을 벗겨낸 옥수수와 달콤한 단팥을 버무린 건데 정말 맛있었다.

나중에 주인 아주머니에게 이름과 조리법을 따로 여쭤봤는데 주인 아주머니는 "그게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반찬입니다."라며 멋쩍은 웃음만... 노동이 레시피인 셈이다.

 

 

보리밥의 친구 된장찌개. 너무 짜지 않고, 과한 조리료 맛도 없이 깔끔하게 끓여낸 솜씨가 예사롭지가 않다.

 

 

보리밥 2인을 시켜서 '맛보기'로 주셨다는 생선구이. 아...우리 호강하는 구나...ㅠㅠ 달걀말이와 생선구이라니, 정말 훌륭하지 않은가?

 

 

그리고 쌈을 위한 채소들.

 

 

보리밥과 함께 쓱쓱 비벼먹을 나물이며 버섯, 채소들. 넉넉하게 주신 나물을 아낌없이 넣어주었더니...

 

 

이런 비주얼이 되었다. 이제 고추장과 참기름을 조금 넣고, 잘 비벼준다.

 

 

그럼 이런 모양이 된다. 아,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ㅠㅠ

 

 

함께 나온 고등어구이는 정말 훌륭했다. 고등어구이뿐이랴. 밥이며 밑반찬이며 나무랄데 없는 맛에 감동하며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정말이지 싸오고 싶었던 옥수수 범벅.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고 나니 벌써 10시가 가까운 시간.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데 보리로 담근 식혜가 있어 맛있게 한 잔씩 마셨다. 이 식혜도 별미. 식사 후의 입안을 상큼하게 정리를 해주는 훌륭한 디저트 역할을 한다. 주인의 남다른 고집이나 원칙 같은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밖을 나왔는데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짭조름한 빗물을 와이퍼로 닦아 내며 7번 국도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깜깜한 밤중이라 더 선명하게 들리던 파도 소리와 함께 비로소 동해구나, 저 너머가 바로 바다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홍게와 오징어를 잡는 배들이 대낮처럼 휘황하게 불을 밝히고 있던 항구를 지나 빗물 가득한 도로를 따라 낙산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