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RANCE

어떤날

mimnesko 2012. 3. 7. 01:26

아직 고등학생이던 시절 내 소니 워크맨에는 늘 퀸(Queen)의 라이브 앨범(Live Killers)이 들어 있었다.
이후, 이런 저런 용돈을 모아 처음 구입했던 아이와(aiwa) 씨디플레이어(CDP)에는 엉뚱하게 '레드 제플린'이었다.
딱히 록 음악을 좋아해서라기보단, 가요에서 느끼기 어려운 소리의 양감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들국화 이후의 가요란 다들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고 무엇보다 시시했다.
그 시절에는 노른자를 빼먹은 계란 흰자같은 음악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당시 이수만은 무대가 어색한 가수였던 시절이고 이문세는 가수보단 DJ가 체질에 맞아 보였다.
그래도 대학가요제 출신의 유열과 함께 의기투합한 '마삼트리오'는 당시 라디오 공개방송의 최고 예능게스트였다.

여학생들이 '별이 빛나는 밤에'이나 '이종환의 디스크쇼' 공개방송에 열광하고 있던 무렵,
우리는 당시 새로운 음악세계의 친절한 가이드 같았던 '전영혁'이 새벽 2시부터 진행하던 '음악세계'에 푹 빠져 있었다.
무뚝뚝한 이 DJ는 "국내에 없는 앨범입니다. 이제부터 40분간 연속으로 듣겠습니다. 녹음하시죠"라는 멘트가 고작이었고
정말 이후 40분 동안은 음막만 나왔다. 그렇게 만든 테입이 도대체 몇개였을까?

그러던 어느날 교회 선배가 LP 하나를 빌려주었다.
핑크플로이드니 뉴트롤즈니 하며 지독하게 겉멋이 들어 있던 시절이라 촌스러운 가요LP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틈만 나면 청계천 근처로 조잡한 빽판을 구하러 다니던 때였다.

이 앨범을 들었던 건 그래서 한참 후였다. 
앨범들 사이에서 선배의 LP를 발견하고 '아, 그랬었지!' 했다. 그래서 별 기대없이 턴테이블에 얹었는데
결국 곡이 모두 끝날 때까지 숨조차 제대로 못 쉬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용돈을 모아 어떤날의 앨범과 이병우의 솔로 기타 앨범들을 차곡차곡 모아갔다. 

들국화, 신촌블루스, 시인과 촌장, 어떤날. 확실히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카세트 테입으로 구입했던 앨범들은 테잎이 늘어나 나중에는 결국 CD를 구입하기도 했다.
LP와 CD의 미묘한 차이를 '어떤날'과 이병우의 어쿠스틱 기타에서 느끼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어떤날의 CD를 들었다.
오후만 있던 일요일.
그 나른함이 혈관 구석구석에 퍼져나가는 느낌이다.
마치 세상이 공짜 쿠폰 같던 시절. 고양이 낮잠처럼 나른하기만 하던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