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RANCE

묘한 위화감.

mimnesko 2010. 6. 18. 16:05


지하철을 타고 1시간 넘는 거리를 출퇴근하다 보면, 보통 2~3명의 서로 다른 물건을 파는 행상을 만나게
된다. 물건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판매하는 방식 역시 다양하다.
대뜸 크게 소리부터 버럭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귀에 걸게끔 되어 있는 핸즈프리 마이크로 조근 조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신경질적으로 고무장갑을 쥐어뜯는 아주머니가 있는가 하면,
예리한 칼날로 종이를 썩둑썩둑 썰어내는 분도 있다.
(이분이 판매하는 건 예상대로 칼을 연마하는 숯돌이다. 조금 탐났다)

하지만 어떤 형태이든지 붐비는 아침 지하철 안에선 환영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인데,
요즘 자주 만나는 기이한 차림의 아저씨(혹은 할아버지? 여튼 40대 중반에서 60대 초반까지 가늠할 수 없는
외양을 하고 있다)는 판매하는 물건부터 외양까지 참 독특해서 저절로 눈길이 가는 스타일이다.

거의 씻은 적이 없어 보이는 레게 머리(인지 아니면 원래 지독한 곱슬인지 모르겠지만)에 기름기가 잔뜩 낀
동그란 은테 안경을 쓰고 있다. 술을 즐기는지 얼굴색은 어두웠지만 치아는 놀랄정도로 하얗고 가지런했다. 
상의는 꽤 지저분한 느낌의 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의외로 안의 셔츠는 꽤 깔끔하게 세탁이 되어 있다.
물론 셔츠의 넥이나 손목부근의 다림질도 꼼꼼히 되어 있다. 하의는 제대로 워싱이 되어 있는 진이다.
상태도 깔끔하고 제대로 세탁이 되어 있다. 간단히 핏을 보더라도 누군가의 바지를 빌려입은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그리고 한눈에 보아도 싸구려가 아니었다. 바지 아래의 운동화는 나이키 에어. 역시 조잡한 모조품 같은 건 아니고 제대로 맞춰 입은 신발이다.

이렇게 보면 좀 혼란스러워진다.
언뜻 보기엔 거리에서 오래 지낸 분의 인상인데 꼼꼼히 살펴보면 나이부터 옷차림까지 도무지 종잡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 분이 어떤 제품을 팔았는지 조차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역시 뭔가 앞뒤가 잘 맞지 않는 제품이었던 것 같다. 옷차림부터 상당히 확신이 있는 목소리까지, 말 그대로 묘한 위화감이 느껴진다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더운 날씨에 긴팔 셔츠에 조끼까지 갖춰 입은 모습을 보면 어쩐지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세련된 말솜씨나 잔돈을 거슬러 주는 것을 보면 영악한 상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 분의 풍모는 누구를 고의로 속이거나 상술처럼 옷차림을 할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내내 묘한 위화감에 내내 혼란함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위화감은 비단 나뿐만은 아닌 듯 보였다.
지하철에 있는 몇몇 사람들도 혼란스러워 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어, 이게 뭐지?' 라거나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라는 식이다. 물론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의 경우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드렁히 관심없이 dmb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기차 화통 소리를 내며 옆 사람과 대화하거나 정신잃고 잠들어 있거나 이다.

이런 풍경 속에 정신적으로 정상적이라는 것의 경계는 미묘해진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