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RANCE

장비병?

mimnesko 2010. 8. 16. 12:00

3~40대의 남자는 어떤 취미를 택하더라도 '장비병'으로 빠지기 쉽다, 라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그냥 웃으며 흘려 들은 이야기인데 상당한 설득력은 있습니다. 외부 환경의 어떤 '자극'을 통해 취미를 갖게 된 3, 40대의 남성은 단기간에 목표한 '수준'에 이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시간'을 '돈'으로 바꾸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제 경우는 사진을 10년 넘게 취미로 했던 터라 주위에서(절대 '주위'에서) 그런 예가 심심치 않았습니다. 

사진을 시작하면서 덕컬 핫셀브라드 같은 중형 카메라[각주:1]부터 구입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40대 후반에 탄탄한 경제력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는 한데, 그리고 핫셀은 틀림없이 좋은 카메라이긴 하지만 입문자가 다루기에 적당한 모델은 아닙니다. 물론 필름 현상부터 시바-크롬 인화까지 욕심을 내신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처음부터 다루기 어려운 카메라는 쉽게 사진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하고, 값비싼 유지비용과 실망스러운 결과물 사이에서 늘 다수의 장농카메라[각주:2]를 양산하기 때문입니다.

입문자에게 적당한 기종은?
만약 필름카메라부터 시작하는 경우(저는 무조건 필름부터 시작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라면 미놀타 X-700을 주로 권해줍니다. 표준렌즈 세트로 구성해도 13만원 안팎이고, 필름 카메라이면서도 프로그램(P)모드가 가능하기 때문에 어려움없이 사진에 흥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미놀타의 색감과 화질은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비싼 필름을 버릴 가능성도 적습니다. 

미놀타의 수동렌즈(MD, MC계열)를 사용하기 때문에 장비병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카메라 메이커들은 가장 발군의 렌즈를 표준화각에 적용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렌즈이고, 그 렌즈의 성패에 따라 카메라의 성공여부가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F1.4, 1.9, 2.0 정도의 밝은(Fast) 렌즈로 제작합니다. 만약 표준렌즈를 사용하고 있다면 그 메이커에서 가장 좋은 렌즈를 사용하고 있다고 자부하셔도 좋습니다. 초광각이나 초망원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아범렌즈'니 '여친렌즈'니 다 필요 없습니다. 45~50미리 표준으로 좋은 결과물을 내지 못한다면 렌즈가 바뀐다고 사진이 바뀌진 않습니다. 무조건 표준에서 좋은 결과물을 내도록 노력하면 됩니다.  

유지비가 많이 들지 않을까요?
필름 카메라가 유지비가 많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우선 필름을 사야 하고, 촬영한 필름을 현상하고 필요하다면 인화해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떤 취미든지 필요한 부대비용이 있습니다. 스키를 좋아하면 스키장까지 가기 위한 경비가 필요하고, 볼링이 취미라면 게임비용/대화료 등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필름 카메라는 '초기투자'비용이 적고 '뛰어난 결과물'을 보여주면서도 압도적으로 '낮은' 유지비용이 듭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36컷 필름을 구입하면 1롤당 2,000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고, 코스트코의 필름스캔 서비스를 이용하면 롤당 1,500원에 현상/스캔해서 CD에 담아줍니다. 즉 카메라 비용을 제외하고, 롤당 3,500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 것입니다. 컷당 100원의 비용입니다. 그리고 필름은 메모리카드와 달리 한롤의 장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집중력있는 촬영을 하게 됩니다. 함부로 셔터를 누르지 않는단 뜻입니다. 언뜻 보기엔 필름카메라의 유지비가 훨씬 많이 들 것 같지만, 정작 사용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디지털...
그래도 디지털 카메라가 대세라고 생각한다면, 되도록 50만원대 후반의 '수동모드'를 가지고 있는 제품을 선택하는 것을 권합니다. 셔터만 누르면 찍히는 똑딱이 카메라는 메인이 아니라 서브의 용도입니다. 그리고 똑딱이로 제대로 된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메인으로 사용할 디지털 카메라는 50만원대 후반의 '수동모드'가 있고, 휴대가 간편하고, 고정밝기나 고정 화각을 가진 제품으로 구입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최근엔 파나소닉이나 캐논 등 여러 메이커에서 이 정도 타겟의 좋은 제품들을 많이 내어놓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사진을 하다보면 렌즈에 대한 욕심이 생기고, 삼각대도 마킨즈 볼헤드에 짓조의 카본 트라이포드를 욕심내게 됩니다. 하지만 사진은 온라인 게임처럼 좋은 아이템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저평가된 렌즈와 바디로 월등한 결과물을 낼 수도 있는 것이 사진입니다.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이고, 그 빛을 잡아낸 카메라의 매커니즘과 필름(혹은 CCD)이겠지만, 무엇보다 촬영할 주제를 결정하고 셔터를 누르는 것은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죠.

  1. 일반적으로 필름/디지털 카메라는 35mm 필름을 표준하고 있습니다. CCD의 경우도 35mm 필름면적을 환산해서 표기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핫셀등의 중형포맷은 6X6, 6X7 등 120mm 포맷의 필름을 사용합니다. 대충 봐도 3배 이상 촬상면이 넓어서 광고/패션 등 고화질의 촬영을 위해 사용되곤 합니다. [본문으로]
  2. 한때 장농카메라 신드롬이 좀 있었죠. 동호회 어떤 분이 장농에서 Leica M6를 찾으셨다는 말에 다들 버닝했던 적이... 그런데 결정적으로 저희 집에는 장농이 없습니다. [본문으로]